욕망.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게임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없는 사람은 게임을 만들 수가 없죠. 저는 현재 31살의 게임프로그래머로서, (웬만한 게이머들은 이름을 대면 알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게임의) 프로그램팀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게임을 만들고 싶은 욕망 때문에 일을 시작했죠.

게임을 접하고 좋아하는 거야 아주 어렸을 때 일이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고1때의 일입니다. 중3때 접한 듄2[각주:1]를 보고, 나중에 저런 게임을 만들면 정말 멋진 사람이 될거 같은 느낌이 들었죠. 이리저리 PC통신으로 (93년 당시) 알아본 결과, 요즘 게임은 보통 C로 만든다는 것을 알아냈고, 서점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책 중에서 가장 얇은 C언어 입문서를 사들고 왔습니다. 그게 94년, 고1때의 일이죠.

물론, 그 전, 초등학교(저는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만) 때 다들 하듯이 GW-BASIC[각주:2]등으로 기본적인 프로그래밍은 익혔죠. 컴퓨터학원 다니면서 심심풀이로 테트리스나 15-퍼즐이나 오목같은 간단한 게임을 만들면서 지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전부였죠. 베이직의 파일입출력을 끝끝내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보다 대규모의 프로그램은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베이직의 파일입출력 라이브러리는 괴악하기 그지없습니다) 베이직으로는 고등학교때 컴퓨터동아리에서 '땡겨[각주:3]'내기 테트리스 짜기나, Dragon Curve[각주:4](쥬라기 공원의 각 장 앞부분에 나온 그 드래곤 커브)를 Q베이직[각주:5]으로 구현하며 논 것이 거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베이직의 한계를 느낄 무렵, C라는 언어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C언어 책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위에서도 썼지만) '얇은 책'이었습니다. 저는 나름 독서광이었고, 새로운 것을 접할 때는 간략하게 개괄적으로 설명한 책이 더 나에게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적합한지를 아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C언어의 모든 면을 자세히 설명한 TCPL[각주:6]같은 책을 골랐더라면 인내심이 한없이 0에 가까운 저는 이내 포기하고 말았겠죠.

제 인내심은 욕망을 지지할 정도로 견고하지는 못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게임 제작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특성을 파악해야 했던 것이죠.

(다음에 계속)
나는 이렇게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2-



필자 : Uhm

경력 6년차의 게임 프로그래머. geek의 화신이며 포스를 수련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홈월드나 토탈어나힐레이션, COH 같은 RTS와 FPS를 좋아하지만 요즘은 기묘하게도 와우를 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게이머입니다.

언제나 후배들에게  포스의 어두운면에 대한 주의를 설파하는 뼛속까지 프로그래머.

  1. Westwood Studio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이후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의 효시가 되었다.
    [본문으로]
  2. MS에서 만든 행번호 기반의 BASIC. [본문으로]
  3. 짜먹는 펜슬형 빙과류의 상품명. [본문으로]
  4. 종이 띠를 한 방향으로 절반씩 접은 자국을 90도로 꺾으면 나타나는 형상. 간단한 프랙탈 도형의 예로 자주 소개된다.
    [본문으로]
  5. 통합 IDE를 가진 MS의 BASIC 구현. MS-DOS와 함께 배포되었다. [본문으로]
  6. The C Programming Language. C언어의 창시자인 커니건, 리치가 쓴 C언어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책.강컴 링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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