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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전 회장인 야마우치 히로시가 85세의 나이로 영면했습니다. 

 

지금 닌텐도의 사장은 이와타 사토루이고 2002년에 경영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닌텐도에 큰 위기가 닥치리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1949년부터 2002년까지 닌텐도를 경영한 경영자의 죽음이란 것이 그렇게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닌텐도라면 주로 이와타 사토루나, 미야모토 시게루가 많이 다뤄지고 있고, 경영자인 야마우치 히로시는 그렇게 비중있게 다뤄지지는 않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직접 게임을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게임 팬들에게는 인지도가 적고, 일본의 경영자이기 때문에 미국의 비지니스 중심의 역사서에서도 비중을 크게 두지 않는 것 같네요.

게임묵에서는 그를 추모할겸 마리오 이전의 닌텐도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볼까 합니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닌텐도의 3대 사장이고, 젋은 나이에 닌텐도의 사장이 되었다.", "닌텐도는 화투를 만드는 회사였다." 라는 것은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화투가 갑자기 패미컴이 되었을리는 없지요. 

닌텐도의 창업주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증조부입니다. 3대째인데, 증조부라니 하나를 건너뛰었나 싶으실텐데 지금부터 한번 훑어보죠. 

야마우치 히로시의 증조부인 야마우치 후사지로는 메이지시대를 살아왔고 1889년 수제 화투를 제작, 판매하기 위하여 닌텐도 곳파이(임천당 골패任天堂骨牌) 회사를 창업합니다. 
임천당의 뜻을 풀이하면 사람의 할일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 라는 진인사대천명이란 뜻이었다는군요.
닌텐도 화투는 교토 지방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고, 이후 도박에 사용되면서 사업이 크게 성장했다고 합니다.

전문도박꾼들이 등장하고, 사기등이 횡행하면서 타짜를 보면 알수 있듯이 한판 하는데 새 화투를 사용하게 되었고, 화투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닌텐도의 사업도 크게 성장합니다. 


복각된 닌텐도 화투. 우측이 인기있던 대통령인듯 (..


1907년엔 포커가 일본에 유입되면서 서양식 카드도 생산하게 되었고, 교토와 오사카의 닌텐도 직영상점 뿐만이 아니라 일본담배소금공사와 협상을 타결하여 전국의 담배상점에서도 닌텐도 화투와 카드 들을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은퇴할 무렵엔 닌텐도 곳파이는 일본 최대의 카드회사가 되었습니다.

야마우치 후사지로의 딸 테이와 결혼하여 데릴사위로 들어온 가네다 세키료는 성을 야마우치로 바꾸고 닌텐도의 2대 사장이 됩니다. 야마우치 세키료는 부부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사업수완은 장인만큼 좋았는데요. 그때까지 수제작을 하던 화투를 공장을 지어 대량으로 제작하고, 유통회사를 창립하여 강력한 판매량을 구축했습니다. 

야마우치 세키료와 테이 부부에게도 딸들만 있었는데, 그중 장녀 야마우치 키미에게 이나바 시키노조가 데릴사위로 들어와 아들 히로시를 얻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닌텐도의 3대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입니다. 시키노조는 히로시가 5살일때 집을 나가버리고 키미는 히로시를 친정에 맡기고 동생부부 집으로 들어갑니다. 외조부는 히로시를 엄격하고 가혹하게 길렀고, 그에 대한 반발로 히로시는 고집세고 외조부와 사이가 안좋았다고 합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와세다 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였지만 외조부 야마우치 세키료가 뇌졸증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결국 학교를 중퇴하고 닌텐도 곳파이를 물려받게 되었는데요. 처음부터 화투파는 가문이라는 것이 맘에 안들었던 히로시는 야마우치 세키료에게 회사를 물려받는 대신 조건을 내겁니다. 야마우치 가문에 자신만이 닌텐도 곳파이에서 일하겠다는 조건이었고, 야마우치 히로시는 내키지 않지만 회사를 물려받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친척들을 다 해고하고 그의 말을 들어줍니다.

야마우치 세키료가 죽고 회사를 물려받은 야마우치 히로시는 바로 오랫동안 회사를 지켜왔던 중역들을 차례대로 해고하고 회사의 지배력을 강화합니다. 그리고 1951년 회사의 명칭을 닌텐도 카루타로 변경. 카드 제조 공정을 현대화합니다.

1953년에는 서양의 수입카드와 경쟁하기 위해 최초로 플라스틱 카드를 제작하고, 1959년엔 디즈니와 기술협정을 체결하여, 미키마우스등의 디즈니캐릭터들을 인쇄한 오락용 카드를 생산하여, 시장을 아이와 가정으로 확대하고, 새로운 유통체계로 백화점과 대형완구점에도 납품을 시작하여 회사를 크게 확장하였습니다. 

서양과의 카드경쟁에서 한계를 느낀 히로시는 사업의 다각화를 시도하는데요. 그 첫번째는 대실패한 즉석쌀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택시회사와 러브호텔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운영에 어려움을 느끼고, 사업을 정리하고 본래 닌텐도의 사업에 집중하며 다음 사업을 준비합니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다음 사업은 회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자산을 활용해야한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닌텐도가 그동안 쌓아왔던 배급망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닌텐도의 다음 사업을 오락산업으로 정한 야마우치 히로시는 사내에 개발부를 설치합니다. 

한편 요코이 군페이는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닌텐도에 카드와 화투를 생산하는 기계를 관리하는 기술자로 입사하였는데, 닌텐도는 신제품 개발을 위하여 게임부라는 이름의 연구개발부서를 만들었고, 닌텐도 내의 Geek들중 하나였던 요코이 군페이에게 신제품 개발을 시킵니다. 그는 평소 기계로 장난감을 만드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고, 야마우치 히로시에게 울트라 핸드를 들고 갑니다.


http://blog.beforemario.com/2011/03/nintendo-ultra-hand-1966.html

만족한 야마우치 히로시는 울트라 핸드의 제품화를 지시하고 큰 성공을 거둡니다. 닌텐도는 이후 계속 울트라 시리즈 완구들을 생산하게 됩니다.

이후 더 나은 장난감을 개발하기 위해 고심하던 개발부 직원들은 샤프에서 태양전지 영업을 나온 우에무라 마사유키를 만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는데, 태양전지패널에서 새로운 장난감의 가능성을 본 닌텐도는 우에무라를 닌텐도로 영입하고 태양전지 패널을 센서로 이용. 새로운 장난감인 광선총 게임기를 만들어 엄청난 이기를 끌게 됩니다.


http://blog.beforemario.com/2011/02/nintendo-custom-gunman-and-custom-lion.html

이후 당시 일본에서 유행이었든 스키트 사격에 착안하여 닌텐도는 이 시스템을 이용하여 레이저 광선총 사격장을 만들어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1975년 야마우치 사장은 반도체의 가격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국의 게임시장에 관심을 가졌는데, 당시에 이미 마그나복스 오딧세이가 출시되어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야마우치는 마그나복스와 교섭하여 오딧세이의 제조, 판매 라이센스를 따냈지만, 반도체 제작기술이 없었던 닌텐도는 미쓰비시와 제휴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체 기술력을 갖추어 1977년에는 컬러 TV 게임 6을 이후엔 컬러 TV 게임 15를 출시 하여 TV 용 게임기도 제작하게 됩니다.


http://blog.beforemario.com/2011/03/nintendo-color-tv-game-series-1977-1979.html
컬러 TV 레이싱, 컬러TV 게임 6, 15, 컬러 TV 블록격파

컬러 TV 게임 씨리즈는 괜찮은 매출을 보였자만 야마우치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더 새로운 것을 원했습니다.

당시엔 전자계산기가 등장하여 굉장히 많이 팔리고 있었는데, 가격은 싸지고 크기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요코이는 동료 기술자들과 샤프에서 생상된 부속들로 가장 작은 컴퓨터 게임기들을 개발하였는데, 그것이 게임 & 와치 (Game & Watch) 씨리즈입니다.



요코이 군페이가 게임 & 와치에 집중하고 있는동안 야마우치 히로시는 큰 게임기에 집중 하였는데, 닌텐도는 그동안 헬파이어, 셰리프, 스카이 스키퍼, 레이더 스코프 등의 아케이드용 게임을 제작하였습니다.


셰리프
http://blog.beforemario.com/2012/02/nintendo-sheriff-1979.html


이시게 미야모토 시게루가 동키콩을 개발하기도 하였습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나중에 군페이에게 영입되어 게임 & 와치 게임을 제작하기도 하지요.

한편 샤프에서 영입되어 군페이와 함께 광선총 장난감을 만든 우에무라는 야마우치의 지시로 비디오게임기를 제작합니다. 미국의 아타리를 보고 게임기에 미래를 느낀 우에무라는 야마우치에게 '다른 회사가 적어도 1년간 복제할수 없는 제품'의 개발을 지시합니다. 야마우치가 깊게 관여하고 우에무라가 개발해낸 패미컴은 83년 일본에서 출시되면서 이후 전세계의 비디오게임 시장에 그야말로 쓰나미를 가져옵니다.



이렇게 보면 패미컴의 성공 이전에 오리사냥 같은 게임들이 어떻게 이미 준비가 되어있었는지 알 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야마우치 히로시에 대한 평가는 잡스의 그것과 상당히 닮았습니다.

'자신의 기분에 좌우됐고, 변덕스러웠으며, 그 무자비함은 당하는 직원들에게 상당한 좌절과 분노를 유발할 정도였다고 한다.' 라던가 다른 사람들을 안 믿고 자신의 선택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연구팀을 경쟁시켰다는 것도 잡스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특히 패미컴 게임기의 마감부터 색 배치, 컨트롤러 구조, 어댑터 유무등 많은 것을 결정했다는 것 역시 닮아있었습니다.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닮은 것 같군요. (러브호텔은 본인이 굉장히 많이 이용했다고..)

결국 패미컴은 출시되자마자 이미 나와있던 게임기 회사들을 모두 망하게 만들고 MSX를 게임기에서 PC로 밀어버리고 이후 닌텐도는 플레이 스테이션이 등장하기 전까지 전 세계의 거실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후는 뭐 많은 책들이 다루고 있으니 이정도까지만 할까 합니다. :)



출처 : 
닌텐도의 비밀 : 닌텐도는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나. (GAME OVER : How Nintendo Zapped an American Industry, Captured Your Dollar, and Elslaved Your Children)
2009년에 출판된 이 책은 1993년 책을 번역했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 1999년에 개정판이 나오가 2011년에 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스크린샷 출처 : http://blog.beforemario.com 
위키피디아 : 패미콤 항목, 게임&와치 항목 
뉴욕타임즈 : http://www.nytimes.com/2013/09/20/business/global/hiroshi-yamauchi-who-helped-drive-nintendo-into-dominance-dies-at-85.html?WT.mc_id=AD-D-E-OTB-WRLD-0913-WT.mc_ev=click&WT.mc_c=__CAMP_UID__&_r=0 

패미컴 이전에 어떤 상품들을 판매했는지는 해외의 콜렉터들로부터 확인할수 있는데요.
http://blog.beforemario.com/p/list-of-toys-and-games.html 특히 이 사이트는 이전 제품들을 많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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