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여기 재밌는 영상들 있어요! 라기엔 많이 뒷북입니다. 사실 요거 3월 20일에 써놨다가 놔둔 글이에요. 이제야 완성하고 발행하네요...그냥 흘려보낼까 생각했는데, 뭐, 뒷북이어도 재밌으니까요. 괜찮아요.]
근래 해외 게임 뉴스나 블로그를 둘러보셨다면 위 영상 한 번쯤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전 아케이드 게임 동키 콩의 주인공인 점프 맨(마리오)과 구출 대상인 폴린의 역할이 바뀐 게임플레이 영상입니다.
아타리용 동키 콩 롬을 해킹해서 두 캐릭터의 역할을 바꾼 사람은 경력이 10년 넘는 베테랑 개발자 마이크 미카입니다. 지금은 아더 오션 인터랙티브의 CCO인 미카가 이런 일을 한 동기는 단순했습니다. 딸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거지요.
"세 살난 딸과 함께 게임을 많이 합니다. 딸애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 동키 콩이죠. 그런데 이틀 전 여자로 플레이해서 마리오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더군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에서는 피치 공주로 플레이했었으니 동키 콩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요.
저는 이 게임에서는 안 된다고 했고 딸애는 크게 낙담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뭘 달리 할 수 있겠습니까? 한 밤중에 일어나 ROM을 해킹하고 마리오를 폴라인으로 교체했습니다. 마리오의 프레임을 다시 그려서 ROM 안의 팔레트를 교체했지요. 상단의 M도 폴라인의 P로 바꿨습니다." (유튜브 영상의 설명란에서)
원래 미카는 이 작업과정을 친구들만 볼 수 있게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친구들이 레딧에 이 소식을 캡쳐해서 올렸고, 곧 게임 및 IT 미디어는 물론 주류 언론에서도 다룰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화제와 비슷한 시기, 게임 속에서 여성이 구출 대상이 되는 클리셰를 탐구하는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대중문화를 여성주의[페니미즘]로 바라보는 영상 시리즈를 제작해왔던 아니타 사키시안이 비디오 게임을 소재로 만드는 시리즈 트롭스 vs 위민 비디오 게임의 첫 번째 에피소드였죠.
[알림: 이 영상에 한국어 자막을 단 사람은 바로 접니다 -_- v]
이 에피소드에서 사키시안은 게임에서 '곤경에 빠진 처녀' 클리셰가 자리잡은 계기 중 하나로 동키 콩을 꼽습니다. '곤경에 빠진 처녀' 클리셰를 뼈대로 활용한 영화 킹콩과 애니메이션 뽀빠이에서 영향을 받은 동키 콩은 다시 동일한 클리셰가 (최소한 서사 층위상에서는) 주된 동기로 작용하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로 이어졌습니다. 또 닌텐도와 미야모토 시게루의 또다른 대표작인 젤다의 전설 역시 이 클리셰를 중심 플롯 장치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키시안은 이 닌텐도의 게임들이 '곤경에 빠진 처녀' 클리셰를 게임계에 대중화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딸을 위해 동키 콩을 해킹했던 미카는 그 전까지 이 트롭스 vs 위민 시리즈나 이와 관련해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성주의나 어떤 이념 주장을 위해서 해킹을 하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인식이 넓어졌고, 앞으로 자신이 게임을 만드는 방식이 바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눈이 뜨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게임은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가 만든 많은 게임은 폭력적이지도 의도적으로 남성 중심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하고보니 이 부분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 딸은 이제 세 살이지만 저는 딸애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연스럽게 생각하지 못했어도 딸애가 언짢아 하는 게 있으면 이제는 생각해보게 됩니다. 제가 게임을 만드는 방식을 정말로 바꾸어놓았습니다." (MSNBC 인터뷰에서)
폴린 버전 동키 콩이 화제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사키시안이 '곤경에 빠진 처녀' 클리셰의 대표작으로 들었던 또다른 게임 젤다의 전설 역시 기존 역할을 바꾼 해킹이 나왔습니다.
제목에 이름이 나오지만 한 번도 주인공이 된 적이 없었던 젤다가 시리즈의 주인공인 링크를 구하는 이 버전은 폴린 버전 동키 콩 이야기를 들은 케나라는 사람이 프로그래머인 남자친구와 함께 제작한 것입니다.
케나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지식으로 손쉽게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 수 있는 데 놀라면서, 젤다로 모험을 할 수 있다는 데 기뻐했습니다.
"젤다로 플레이하는 거 정말 기분 좋아요. 젤다 캐릭터에 더 애착을 느낄 수 있는 데다 정말 제가 굉장한 영웅 같은 기분이거든요. 젤다가 되어 검을 휘두르는 거 정말 멋집니다.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직접 해봐야 한다니까요 :D"
직접 해봐야 한다고 한만큼 케나는 자신들이 만든 패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딸을 위해 동키 콩을 해킹했던 미카 역시 마찬가지고요. (영상 설명란에 zip 파일 링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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