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 2010에서 강연을 하는 제인 맥고니걸 ©TED
게임묵에서 새로운 시리즈 연재를 시작합니다.
한국에서 여러가지 논의를 생산한 게임이나 관련 책, 뉴스, 강연이 있을 경우, 그 논의의 조각들을 모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저번에 제가 번역한 적 있는 그랜드 쎄프트 오토 4의 비평모음이 실린 영어 블로그 Critical Distance의 편집 스타일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역사적인 첫 회, 첫 번째 소재는 제인 맥고니걸의 TED 강연 "게임을 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입니다.
이는 올해 2월 11일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린 TED 2010 컨퍼런스에서 대체 현실 게임 디자이너 제인 맥고니걸이 가진 강연입니다. 맥고니걸은 강연에서 게임의 특징인 직접적인 피드백과 의미부여, 게이머가 가진 낙관성과 자발성, 튼튼한 사회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 주장하고, 자신이 만든 게임의 사례들을 보여줬습니다. 강연 영상은 1TED.com에서 한글 자막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은 실제 강연이 있었던 2월부터, TED.com에 영상이 올라온 3월, 한글 자막이 등록된 6월에서 지금까지의 추적했던 강연에 대한 (인터넷 상의) 의견들입니다. 6개월이라는 기간에 비해 의견의 양은 예상보다 더 적었지만, 그 중 의미 있는 관점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한국어로 제인 맥고니걸의 강연 내용을 다룬 것은 "사이언스타임즈"가 CNN 인터넷판에 소개된 것을 재차 소개한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는 CNN과 SciTechBlog가 맥고니걸의 강연 내용을 보도한 것을 소개하며, 강연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이후 3월에 TED.com에 영상이 올라왔고, 만화연구가 김낙호씨는 트위터를 통해 "게이머에 대한 지나친 낙관만 빼면 TED2010 최고의 강연 중 하나"라며 강연을 소개했습니다.
숙명여대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공개 강의 호스팅 사이트 SNOW에는 일찍이 강연과 강연 스크립트의 번역이 올라와 있기도 했습니다. 그 곳에서 강연에 대해 몇 개의 댓글이 남겨졌습니다. 먼저 첫 두 댓글을 남긴 신하영, 이보림씨는 비디오게임을 기존의 선입견과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해준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어 댓글을 쓴 이성화씨는 강연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면이 있다"며 과도한 게임화가 가져올 수 있는 측면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첫 댓글을 남긴 사람과 다른 신하영씨는 맥고니걸이 말하는 게임은 소수라고 생각한다며, 상당수의 비디오 및 컴퓨터 온라인 게임은 폭력성과 잔인함이 너무 심해 실제생활에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습니다.
4월에는 스포츠조선의 권영한 기자가 "국내 게임업계, 불신에서 살아남을 길은?"이란 칼럼에서 강연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당시 "게임중독 부모 사건"과 그 파장에 따른 문화관광체육부의 과몰입 대책 발표, 강제 셧다운제를 포함한 여성가족부의 규제책 계획, 스타리그 승부조작 파문 등 잇따른 게임계 악재를 들어, "제인 맥고니걸의 논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게임회사에 "사회적 책임"과 "매혹적인 '게임 현실' 창조를 넘어선 이상적인 '현실 세계'의 구축에 대한 관심"을 요구했습니다.
데이비드 페리의 TED 강연 자막을 번역한 바 있던 저는 6월 초에 벼르고 있던 제인 맥고니걸의 강연 자막 번역을 신청했습니다. 3월에 TED.com에 올라오자마자 신청하려다 누군가에게 선수를 빼앗겼었는데, 그 분이 번역을 마치지 않아 제게 돌아오게 된 겁니다. 번역한 자막은 6월 말에 리뷰가 끝나 TED 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TED.com의 댓글란에는 주로 영어로만 댓글이 올라오는데, 번역 자막이 등록된 후 유일하게 박현성이라는 분이 한국어로 강연에댓글을 남겼습니다. 그는 맥고니걸의 강연을 "훌륭한 대화"라고 칭찬하고, 강연이 "현상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와 환상적인 비전"을 제시했다며 논조에 동조했습니다.
맥고니걸의 주장은 트위터 세계에서도 작지 않은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Topsy의 집계에 따르면 제인 맥고니걸의 TED 강연은 현재 3000여개가 넘는 트윗(리트윗 포함)을 탔습니다. 물론 이건 한국어 트위터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언어로 쓰인 트윗을 포함한 것이고, 한국어 자막을 바로 볼 수 있는 주소를 언급한 트윗은 현재 44개입니다. 또 제가 디자인과 플레이에 포스트로 따로 올린 것도 33개의 트윗을 탔죠.
트위터 반응의 내용 역시 대체로 호의적인 편이었습니다. 단문 메시지 서비스의 특성상 대부분 짧게 긍정이나 호감을 나타냈지만요.
반면, IT 사업을 준비중이라는 한 사용자는 몇 번의 트윗에 걸쳐 회의적인 견해를 내비쳤습니다. 그는 "게임은 게임일 뿐이고, 현실은 현실의 힘만이 바꿀 수 있다"고 지적하며, 맥고니걸의 강연은 "게임보다 더 좋은 것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또 "게임의 달인에게 게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냐 물어보니 폐인만 만들 뿐이라고 답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제가 디자인과 플레이에 올렸던 포스트에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댓글 하나가 달렸습니다. 글을 남기신 분은 이 강연이 "초등학생들이 PC방에서 욕하며 게임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정적인 요소는 빼고 이야기한다며, "교육적인 게임이 그만큼 많아졌을 때 해야 할" 강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작도닷넷 블로그"를 운영하는 xacdo님은 블로그에 "게임의 사회적 의미"라는 포스트로 강연을 다뤘습니다. 그는 강연의 논조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맥고니걸 본인은 "게임을 썩 즐기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며 "게임이 앞으로 유망하고 썰을 풀기 좋으니까 (논의 소재로) 선택한 느낌"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이컨셉 & 하이터치"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우리들 생명과학기술연구소장 정지훈씨는 강연의 내용을 요약한 포스트를 올렸습니다. 그는 이 강연을 "게임에 대한 선입견을 깨버리는데 최고의 강연 중 하나"라고 평하며, "우리나라의 뛰어난 게임 기획자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즐겁게 나눌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길" 제안했습니다.
플래시게임을 소개하는 블로그 Chocogames의 쵸코님은 강연 영상을 보고 "우리는 게임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는 강연을 계기로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세간의 평가를 다시 생각하면서, 개인이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비해 부족해서 느끼는 '불행'과 게임을 많이 한 사람이 게임에서 이룬 '성취'를 대비했습니다. '성취'가 그 '불행'을 없애줄 수 있느냐, 아니면 그 '성취'는 현실의 '불행'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냐가 게임에 대한 관점을 가른다는 것이죠.
다음 소재는 "스타크래프트2: 자유의 날개"(게임) 아니면 "The Art of Game Design"(책) 중 하나입니다. 둘 중 어느 것이든 한국에서의 관련된 논의가 임계질량을 넘으면 글로 정리해 찾아오겠습니다 :)
- alternative reality game; 용어에서 오해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세상을 더 좋게 만든다거나 하는 메시지가 담긴 장르가 아닙니다. 여기서 "대체 현실"이란 게임이 현실을 무대로 하면서 가상의 설정을 가진 세계인 척 하는 걸 말합니다. 맥고니걸의 게임 중 하나인 "석유 없는 세계"가 실제 세계를 무대로 하지만 "석유가 없다"는 가상의 설정을 덮어씌운 것처럼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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