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그렇습니다.

제가 몇 번 트위터에서 게임 디자인 서적의 삼합이라 떠들었던 책들이 모두 한국에 모였습니다. 삼합이란 크리스 크로포드의 "The Art of Computer Game Design" (1984)과 케이티 살렌과 에릭 짐머만의 "Rules of Play" (2003), 제시 셸의 "The Art of Game Design" (2008), 요 세 권을 가리키는 말이었죠.

이 중 "The Art of Computer Game Design"만이 같은 제목으로 2005년에 번역 출간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2010년 7월, 드디어 "The Art of Game Design"이 "짜잔!"하며 번역 출간되었고, 비교적 조용히 "Rules of Play"가 "게임 디자인 원론 1"이란 이름으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모두 게임 디자이너라면 읽기를 강력히 권장하는 책들이지만 혹시 망설이는 분이 있을까 하여 간단히 소개해봅니다.

The Art of Game Design

이 책에 나오는 원리들은 디자인에 지침이 돼주고, 더 나은 디자인을 더 빨리 할 수 있도록 쓸모 있는 관점을 제시해주겠지만, 좋은 디자이너가 되는 유일한 길은 직접 연습해보는 것 뿐입니다. 좋은 게임 디자이너가 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면, 지금 이 책을 덮으세요. 이 책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좋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 이 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입니다. 당신의 남은 전 생애에 걸쳐 하게 될 끝없는 공부, 연습, 되새김, 통합 과정의 시작입니다.

- 책 속에서

"The Art of Game Design"의 원서는 2008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책의 저자인 제시 셸은 카네기멜론 대학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 센터에서 게임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죠. 또 그는 게임 스튜디오인 셸 게임즈의 창립자이면서, 책의 서문에서 밝혔듯 프로 저글러, 작가, 코미디언, 마술사 조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 다채로운 경력을 거쳐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강조하듯, 그는 무엇보다 게임 디자이너입니다.

책은 "게임 디자인에 관한 모든 것"이라는 한국어판 부제가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대의 게임 디자인이 잘 집약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그간의 게임 디자인 이론과 게임 연구는 물론, 심리학, 인류학, 건축, 공학, 문학, 미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문헌을 광범위하게 참조하고 인용해 뜻이 통하도록 정리하고 설명합니다. 이런 방대함과 책 두께 때문에 짐짓 복잡하고 무거울 것 같지만, 저자는 독자와 대화하며 안내하듯 그 내용을 편안하게 풀어나갑니다. 서문만이 아니라 책 전체를 경어체로 번역하는 걸 고려해봤으면 어땠을까 할 정도로요. (전문서인데!)

책은 챕터마다 게임의 구성 요소를 하나씩 설명하는 식으로 전개됩니다. 태초에 디자이너가 있고, 디자이너는 경험을 만들며, 경험은 게임에서 발원하고, 게임은 요소로 구성된다...식으로 저자는 게임 디자인의 마인드맵을 하나씩 그려나갑니다. 셸은 이 책이 그린 마인드맵을 시작점으로 독자가 마음 속으로 자신의 지도를 만들어 나가길 권합니다.

또 책 곳곳에 디자인을 할 때 생각해볼법한 관점들을 정리한 게임 디자인 "렌즈"를 배치해 실제 디자인 과정에서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렌즈를 카드로 만든 "Deck of Lenses"도 있는데, 한국에 출시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한국어판은 역자가 "게임 아키텍처 앤 디자인" 등 다수의 게임 개발 서적을 번역한 분들이라 번역이 깔끔하고 만족스러운 편입니다. 다만 문체를 좀 더 부드럽게 풀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네요.

음......무슨 이야기가 더 필요할까요? 여느 게임 디자인 서적보다 광범위하고 실용적이면서 재미있는 책입니다.

게임 디자인 원론 1

"게임 디자인 원론 1"의 원서인 "Rules of Play"는 2003년 출간되었고, 그 동안 게임 디자인과 게임 연구의 논의에서 많이 인용되어 온 준 고전입니다. 책은 교육자이자 게임 디자이너인 케이티 살렌과 게임 디자이너 에릭 짐머만이 함께 썼습니다. 케이티 살렌은 게임으로 가르치는 학교 "퀘스트 투 런"(Quest to Learn)의 운영진이고, 에릭 짐머만은 "다이너 대시" 등의 게임을 만든 게임랩의 공동 창립자입니다. 두 쪽 모두에 깊이 관련된 이승택님이 이 책의 한국어판 감수를 맡은 게 우연은 아니네요 :)

책은 게임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보다는 게임과 게임 디자인을 분석하는 다양한 방법론을 정리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투자나 수익, 팀과의 커뮤니케이션까지 다룬 "The Art of Game Design"과는 달리 게임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죠. 다른 게임 디자인 서적에 비해 읽기가 좀 빡빡할 수 있습니다.

원서가 688쪽인데 이번에 출간된 한국어판은 254쪽이라, 이후 "게임 디자인 원론 2", "게임 디자인 원론 3" 형식으로 나누어서 나올 예정인가 봅니다. (그런가 하면 책 소개의 목차에는 모든 단원이 표기되어 있네요.) 아직 저는 한국어판을 입수하지 못 한 상태라, 번역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속내를 더 깊이 파고들고 싶고, 연구를 시작하는데 방향을 잡고 싶은 게임 디자이너/개발자 분들이라면 추천할 수 있습니다.

두 저자는 2005년에 게임 논의의 주요 논점을 대표하는 글을 수록한 "The Game Design Reader"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저자의 글들이 논점에 따라 정리되어 해설과 함께 구성된 책이죠. 이후 이 책도 한국어판이 나오길 바라지만, 분량이 무려 954쪽인 데다 다양한 저자의 글이 모인만큼 판권 해결이 어려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2010년 한여름에 한국 게임 디자이너들의 머리와 가슴을 뜨겁게 할 두 권의 좋은 책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직 번역되지 못 한 좋은 책이 너무나 많습니다. 게임 디자인 이론서는 물론이고, 게임 개발과 문화, 비평, 연구에 있어 아직 번역되지 못 한 좋은 책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한국 게임 디자이너들의 지식과 경험, 영감은 미처 정리되지 못 한 채 정처없이 흐르고만 있습니다. 좋은 책의 번역 만큼이나 국내에서도 눈을 확 뜨이게 해줄 좋은 게임 디자인 서적이 나타나길 기대해봅니다.

지난 3월, 게임 기반 교육 분야의 선구자 제임스 폴 지 교수와 엘리자베스 헤이스 교수, 그리고 이승택 교수님이 모인 "게임이 학교다"라는 행사가 열린 적이 있습니다. 교육 기반 게임만이 아니라, 게임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게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훌륭한 자리였다고 합니다(저는 못 가본 사람).

이 멋진 행사를 피그민의 광님이 4일치 모두 대범하게 정리해주신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섯 달이나 지났건만 뭔가 아쉬움이 남았는지, 어제 우연히 구글에 "게임이 학교다"를 검색합니다. 아아, 이것은...!! MBC 웹사이트에 행사의 영상이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맙니다. 어헝헝.

안타깝게도 행사 첫 날 강연의 영상 뿐이고, 그래서 이승택님 말씀은 들을 수 없지만, 그리고 더욱 안타깝게도 한국어 통역이나 자막 같은 건 없지만, 강연을 직접 들어보고 싶었던 저로서는 꽤 기뻤습니다.

동영상 감상은 인터넷 익스플로어 전용입니다(....) 강연을 MP3로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니, 좋은 강연 듣고 영어 듣기 연습하고픈 분께도 추천드립니다.

인디게임 개발자 요르단 매그너슨[Jordan Magnuson]이 한국에서의 원어민 교사 생활을 마치고 동아시아 여행을 떠난다고 합니다. 인디게임뮤니티 TIG Source의 창립자이기도 한 그는 지난 2년간 전북 군산의 한 중학교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해왔습니다.

31일, 그는 블로그를 통해 곧 한국을 떠나 동아시아를 여행할 것이고, 여행 도중에 각 국가에서 보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게임을 만들 거라고 합니다. 그 게임은 모두 프리웨어로 공개될 예정이라네요.

그리고 매그너슨은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모금하려고 킥스타터를 시작했습니다. 킥스타터는 작가가 창조적 활동에 자금을 모금할 수 있도록 마련된 사이트로, 일반적인 투자와는 달리 수익을 나눠갖는 게 아니라 투자금액에 따라 작가가 설정한 보답을 해줍니다. 대부분 그 보답은 창작에 관련된 것(한정판이나 관련 상품, 사인, 크레딧에 이름 넣어줌 등)이죠. 한 마디로, 독자나 관객, 플레이어 스스로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작가의 창작을 지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킥스타터에 대해 더 자세히: 피그민의 관련 포스트)

매그너슨의 프로젝트는 지금 거주하는 한국부터 시작합니다. 프로젝트 웹사이트를 보면 아시겠지만, 이미 한국에 대한 게임이 세 개나 있습니다. 한반도의 분단상황을 다룬 "자유의 다리"[Freedom Bridge]부터 자신들이 가르친 중학생들을 위해 만든 익스페리멘탈 게임 "외로움"[Lonliness], 인터랙티브 픽션 "거기 있음"[Being There]이 있죠. 모두 그가 한국에 거주하면서 만든 겁니다.

분단상황을 다룬 게임 "자유의 다리"[Freedom Bridge]

특히 "자유의 다리"가 가장 인상적인데요. 매그너슨이 DMZ에 다녀온 뒤에 느낀 것을 '낫게임'[notgame]의 실천으로 만든 거라고 합니다. 낫게임이란 "더 패스", "엔들리스 포레스트", "더 그레이브야드"로 잘 알려진 테일 오브 테일즈를 중심으로 하는 창작의 기조인데요. 게임의 성격을 갖지 않는 인터랙티브 아트 혹은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보며 컴퓨터를 이용한 표현의 범위를 다양하게 해보자는 주장이자 실천이죠. (관련 포스트: 테일 오브 테일즈, "이제 게임은 안 만든다") 여러 인디 개발자들이 포럼에 속해 있습니다. 필자인 저도 이 포럼의 멤버이긴 한데, 잠수가 잦은 멤버입니다, 넵(...)

플레이해보면 아시겠지만, 아주 짧고 단순하고 작고, 네, 실험적입니다. 그는 한국을 떠나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타이, 말레이시아, 미얀마, 중국을 경유해 일본으로 향하는 6개월간의 대장정을 계획했습니다. 국가마다 두세개의 게임은 만들겠다고 하니, 어떤 게임이 나올지 기대됩니다. 그리고 과연 킥스타터로 목표액인 5000달러를 모아, 여행도중 웹 디자인 일을 수주하지 않으면서 게임을 만드는 데 더 시간을 쏟을 수 있을까요?

그의 여정을 한 번 지켜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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